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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찬찬히 생각해보는 글을 쓰는 의미

 

 나는 글을 '제멋대로' 쓰는 것을 좋아한다. 일정한 성질도 규칙도 없이 단어 여러 개를 배운 아이가 이 얘기 저 얘기 떠들듯이 마구잡이로 떠드는 것처럼 일관되지 못하게 이 얘기했다가 저 얘기했다가 하며 글을 적었다. 일기라는 포맷 속에서 하나의 스토리를 장황하게 짜내려 가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게 느낀다. 내용보단 그 양에 집중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차 글귀를 써 내려갈 일은 많아졌다. 일정 수 이상의 글을 채워야 하는 깜지. 몇 장 이상으로 쓰라는 독후감을 비롯한 여러 감상문들. 나름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최대한 수식어들을 밀어 넣었고 몸집만 가득 불린 정체모를 글들이 나오게 되었다. 아마 그렇게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나는 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는 수업에 대한 메모와 정리의 연속이었다. 운동을 따로 하지 않아 기초체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으나 그 방대한 수업이 머리로는 들어가지 않으니 손이 언제나 바삐 일했다. 특별히 정말 재미있는 수업이면 머리에 잘 들어가겠지만 대부분의 수업은 꾸역꾸역 빠르게 샤프펜슬을 눌러가며 꾹꾹 적었다. 물론 수업이 끝나고 나면 다시 써 내려가기 싫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고1 때는 정말 무식했어서 힘들어도 도덕책을 다시 봐가며 그 내용을 노트에 써내려갔다. 내가 배운 내용들이 도통 머리에 들어가지 않으니 그 고생은 손이 독차지한다. 다시 해보라해도 못할 짓이었다.

 

 

 대학을 와서는 필기도구를 사용할 일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이라는 걸 따지고 싶진 않지만 내 마음이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윈도우 키 + notepad', 대학시절을 함께해온 좋은 친구다. 타자실력이 어중간했던 나는 쉬는 시간에 심심할 때마다 타자연습을 했고 (한글타자만 연습했다.) 한글타자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나오게 되었다. 메모장으로 교수님의 말을 듣고 곧바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노트로 정리했다면 대학에서는 그것이 컴퓨터의 메모장으로 옮겨왔다. 그저 아주 사소한 변화만 생겼을 뿐 글을 쓰는 방식 자체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안 가겠지.' 하며 생각했던 입대날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자격증을 통해 공군 전산병으로 지원을 할 수 있었고 운동 신경하나 없는 나도 무사히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에 배치받을 수 있었다. 선후임 관계라던가 생활하는 부분에서 크게 문제없이 보냈지만 근무에 있어서는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이곳에서 나의 글은 또 다른 모습을 보였다. 공군 최대 규모의 인트라넷 휴머니스트. 그곳에 짧은 글 게시판에 하나하나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글은 처음은 분노로서 시작했다. 내가 이곳에서 제대로 일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 간부님들이 나의 행실에 안 좋게 평가하는 와중에 비수처럼 박힌 말들 등등.. 어리숙해서 일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는 내가 받은 불안과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아 짧은 글로 표현을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신기하리만큼 분노가 사그라드는 것을 느끼고 나의 이성을 회복시켜주었다.

 

 

 초등학생 시절, 시 짓기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이곳에서 새롭게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다. 별 볼 일 없을 것 같은 나의 시는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고 시간이 멈춰버린 이곳에서 대화의 물꼬가 되어주었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주고받던 편지글들도 생각난다. 물론 나의 동기였던 형님이 나보다 더 고생하신 것 같았지만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편지로 보이는 것 같아 기뻤다. 볼멘소리만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지만 한편으론 큰 힘이 되었다.

 

 

 돌고 돌아와서 보면 결국 이러한 글조차도 결국 '내 멋대로' 쓴 글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역한 이후 그 편지를 다시 보지 않았으며 내가 쓴 시들은 인트라넷 어딘가에 두고 왔다. 학창시절에 수업내용을 정리하던 노트들도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다신 보지 않을 글들을 내멋대로 써 내려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글을 쓰는 의미는 무엇일까? 다시 보지 않을 글들을 쓴다면 나의 생각을 배설해버리는 느낌으로 팽개치는 글들을 나린 다면 그저 글만 찍어내는 기계와 다를게 무엇인가.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나의 어지러운 생각들을 정리하는 대에는 내가 내 멋대로 쓴 글만큼 효과가 탁월했던 것은 없었으니까. 또한 내 생각이 변화되는 걸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너덜너덜해진 스프링노트에 샤프펜슬이 번지고 번져 종이를 회색빛으로 덮은 초등학생 시절의 일기를 보면 같은 하루마저도 다르게 적은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변변찮은 나의 생각도 확인해보며 웃을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것들이 나에게 큰 의미가 된다.


 이렇게 끝맺음하면 참 깔끔한 글이 나오겠지만 여기서 끝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내 글들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생겼다 사라졌다 또다시 생기는 이유... 약속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내 약속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것에 대한 후회가 글로 담기고 이후에 그러한 나를 돌아보면 내가 지키지 못한 것들이 많아 나 스스로 보기가 부끄러워진다. 점차 내 멋대로 쓴 글조차도 보기가 부끄러워지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또한 후회는 한 두 개가 아니다. 정말 많다. 끝도 없이 나온다. '미안합니다.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무섭게 잘못을 반복하고 나를 부끄럽게 만들어버린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고 얼굴을 땅에 파묻은 채로 나를 숨기고 싶었다. 내가 쓴 글을 내가 마주 보기 부끄러운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점차 점차 글을 계속해서 쓰는 것을 멈추게 되는 것 같다. 책도 잘 안 읽고 사람들과 대화를 그리 많이 나누지도 않는 사람이 글 쓰는 것 마저도 부끄러워서 자꾸만 피하게 된다. '하지 않을 계획표'처럼 '다짐뿐인 일기장'처럼 '이루지 못할 소원'처럼...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이런 것 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나의 생각을 내보일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이미 손으로 쓰기에는 컴퓨터로 쓰는 게 편하고 얽혀있는 생각을 실시간으로 풀어내 줄 것도 수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어찌 보면 지금도 나는 내 멋대로 글 쓰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나를 향해 외치고 있으나 혹시나 누군가 이 글을 보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괜한 기대감에 사로잡히려고 이런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관심종자일지도 모르겠다. 거만 덩어리에 모순덩어리인 나지만 조금은 뻔뻔할지라도 이제는 '나도 다시금 보고 싶은 글'들을 만들어보고 싶다. '남에게 당당히 보여줄 수 있는 글'을 만들 정도로 유려하고 멋있진 못하지만 조금은 뻔뻔하더라도 '그래도 전보다는 나아지고 있군',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가고 있군'이라 하며 글을 계속 써내려가고 싶다. 부끄러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겠지만 그래도 다시금 보고 싶은 글을 많이 써내려가고 싶다. 아마도 장장 1시간 여의 생각에 끝에 도달해낸 결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용두사미에 가슴 아프지만 뭐 어때.. 멈춰있던 것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것. 계속해서 이어나가 미래의 나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삶이었지?' 하면서..

 

 댓글이든 짧은 글이든 소설이든 게임 스크립트든 유형은 크게 상관없다. 혹시 다른 사람들은 글을 쓸 때에 어떤 마음을 담아 쓸까. 굳이 마음을 담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왠지 모를 호기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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